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골프를 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

내기 골프를 해서 돈을 따고 여유롭게 캐디피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찔러주고, 밥 플러스 술 화끈하게 쏘고, 거나하게 취한 기분에 대리기사를 부르고…. 그리고도 약간 돈이 남을 정도! 진짜 골프 치는 맛,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래 이 맛에 골프 치는 거야!’

첫 이글도 무척 좋았고 홀인원을 했을 때도 뛸 듯 행복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언더파도 날아갈 듯 기뻤고 드디어 60대 타수를 기록했을 때, 골프가 만만한 주먹 만해 보이면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그 다음주 바로 그 골프장에서 90타 쳤다).

골프의 그런 순간순간들이 기쁨이나 행복 아니라고 얘기할 수 없다. 인정한다. 행복 맞다. 골프를 친 20년 중에서 15년을 그 맛을 위해 골프를 쳤다. 그런데 가만히 차분히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만을 행복’이라 하고 그것이 ‘골프의 목적’이 되어버리면 수없이 많은 그렇지 않은 골프들은 어찌되는 것이고,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요즘 뜨고 있는 일본 스님이 쓴 <생각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이 있다. 너무 짜릿하고 큰 자극과 행복을 찾는 습관(?)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 잔잔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법을 잃어버렸기에 더 짜릿한 더 크고 깊은 자극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보기플레이어라면 파를 하는 행복이 아니라 누가 봐도 더블 보기를 할 상황에 보기를 지켜낸 행복, 싱글플레이어라면 버디를 하는 행복이 아니라 보기를 하지 않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늦가을, 초겨울? 이즘의 골프는 짜증날 일이 많다. 굿~샷! 캐디 언니의 외침을 듣고 갔는데 새벽그린이 얼어서 공은 튀어 사라지고, 잔디가 누워버려서 샷의 허용오차범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그린피를 깎아주지도 않을 것이면서 욕 나올 상황은 넘치고 또 넘친다. 낙엽 진 여백의 숲, 인적이 드문 고즈넉한 페어웨이, 막막한 그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둘 수 없다면 그린피는 진짜 비싸다. 봄은 봄이라 짜증나고 여름은 여름이라 짜증이 난다면 날씨 좋은 몇몇 가을을 제외하면(실은 그런 날도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골프는 너무도 불행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은(비와 바람이 겹치면 공자 노자도 골프치기 싫어하겠지만), 무성한 여름은 선선한 바람과 그늘이 너무 좋고,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푸른 가을 하늘은 골프 아니어도 좋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에 마음을 두는 버릇을 들이지 않고서는 사실 골프의 행복은 요원하다 못해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 보면 골프의 행복은 스윙이나 샷의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골프를 바라보는 시각 혹은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꾸준한 연습으로 골프가 생활에 뿌리를 깊이 내려준다면? 그는 정말 골프와 더불어 행복한 사람! 사업도 사랑도 함께 성공할,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거머쥘 이 시대에 드문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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