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수기자
“20년 전 일이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죠. 내 평생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홀인원이었으니까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예치과’의 제한봉(72) 원장은 본인이 홀인원할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졌다. 제 원장의 홀인원은 1991년 10월29일 경기 광주시의 뉴서울CC 3번홀에서 터졌다. 티오프 시간은 오전 7시30분. 청명한 가을 아침이었다. 안개가 그린 주위에 옅게 깔렸고 바람은 잠잠했다. 그린은 평지보다 약간 높았고, 티박스에서 깃대까지 거리는 145야드. 그린 앞에는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어 초보자들에게는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홀이었다. 동반자들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대한치과의사협회 학술대회 준비를 위해 모인 선후배 치과의사였다.
제 원장이 보기에 거리로는 8번 아이언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캐디백에서 7번 아이언을 꺼냈다. 공을 홀컵에 바싹 붙이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었다.
“당시 제 별명이 ‘컴퓨터 샷’이었어요. 목표지점으로부터 좌우 10야드 바깥쪽으로 아직도 공을 쳐본 적이 없습니다. 이날 7번 아이언을 잡은 것도 최소한 버디는 확실히 잡자는 계산에서였죠.”
티박스에 선 제 원장은 7번 아이언으로 피니시를 짧게 하는, 일명 ‘펀치샷’을 날렸다. 깃대를 향해 공이 힘있게 그리고 똑바로 날아갔다. 그린 위에서 2차례 튄 공은 굴러가더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홀인원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이전에도 티샷한 공이 핀을 맞고 홀컵 바로 옆에 떨어진 경험은 많이 해봤거든요.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죠. 홀컵 쪽으로 안개를 헤치고 걸어갔습니다. 아, 그런데 하얀 공이 홀컵 안에 살포시 자리잡고 있는 거예요.‘어라! 이거 들어갔네’라는 표현이 절로 튀어나왔죠. ‘신기하네’라고 혼자 중얼거렸어요. 동반자들이 일제히 축하인사를 해주었죠.”
홀인원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제 원장의 경우엔 어땠을까. 물론 ‘대박’이 났다. 3번홀에 걸려 있는 홀인원 상품이 대한항공의 하와이 왕복항공권 일등석 2장이었다. 그러나 진짜 좋은 일은 따로 있었다.
“홀인원한 바로 다음날이 우리 큰 딸 결혼식이었어요. 첫딸을 시집보내는 일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하고 한편으로 걱정도 했는데 무사히, 그것도 성대하게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죠. 그뿐 아니에요. 연이어 다음날 열린 학술대회도 큰 탈 없이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죠. 3년 전인 1988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을 명동에서 이곳 코엑스 쪽으로 옮겼는데 홀인원 이후에 더욱 번창했죠.”
1974년 골프에 입문한 제 원장은 일반 주말골퍼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량을 늘려 나갔다. “내기 골프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똑바로 공을 보내는 데 집착했어요. 타수를 줄이기 위해선 정확한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믿었죠. 당시 남산 올라가는 길목의 리라국민학교 인근에 연습장이 있었는데 그곳을 찾아 50m 안팎에 놓여진 바구니에 공 집어넣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거리는 신경 안 썼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드라이버 거리가 200야드 정도밖에 안 나지만 한창 젊었을 때도 250야드 정도만 날렸어요. 그러니 ‘오비(OB)’는 절대 안 냈죠. ”
제 원장의 그런 훈련방법은 타수를 줄이는 데 주효했다. ‘싱글’을 넘어 ‘핸디3’의 경지에 올랐고, 5년 전 경기 고양시의 서울컨트리클럽에서는 생애 베스트스코어인 68타를 적어내기도 했다. 이글도 20여차례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골프연습장협회로부터 연습장 티칭프로 자격증도 획득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은퇴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저는 아직도 ‘젊은 닥터’들과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봅니다. 지난 연휴에 미국 보스톤 치대와 하버드 치대에서 임플란트 연수를 마치고 장기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건강을 지닌 것도 다 골프로 체력을 가꾼 덕분이에요. 요즘도 매일 아침 헬스장에서 체력단련을 하고 오후 퇴근해서는 또 연습장에서 공 200개 정도씩 치죠. 그리고 주말이면 반드시 필드를 찾아요. ”
제 원장에겐 최근 골프와 관련, 뚜렷한 목표 2가지가 생겼다. 우선 골프 경기에서 본인의 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에이지 슈트’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또 하나는 세계 100대 유명골프장을 죽기 전에 모두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바람을 전하는 제 원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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